추리소설 노인의 죽음 old man's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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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편 ] 노인의 죽음
카운터 담당은 말이 많은 사내는 아니었다. 시간은 오전 2시가
가까웠고 가끔 불어대는 바람 이외에는 어떤 소리도 없었다.
카운터 담당은 방금 커피포트의 희미한 온기를 셔츠를 통해 흡
수하고 있었다. 경관은 식사가 맛이 없어서 혀를 찼고, 카운터
담당는 팔짱을 낀 채 창 너머 바깥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경관에 대해서 단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
음식을 먹는 방법이 아주 인간적인 점이 그것이었다. 손님 중
에는 그를 진저리나게 하면서 음식을 먹는 사람이 많다. 그는
이 경관이 어떤 인간인지 잘 몰랐지만 대체로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서넛 정도, 피부색이 아주 희고 찬
바람을 맞아서 생기있게 붉은 기가 도는 얼굴이 부드러운 검은
머리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경관의 이름은 허버트였고 대학 출신이었다. 카운터 담당이 아
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아무튼 그는 말이 없는 편이었으니까.
기금도 그저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에이브람즈.」
경관이 말을 붙였다.
「네?」
카운터 담당은 그를 봤다.
「좀 색다른 경험을 해서 말야.」
「그래요?」
담당이 아주 흥미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주 기묘한 얘기야.」
바람이 바깥 간판을 흔들어 움직였다. 에이브람트는 잠시 그
소리에 걱정이 되었다. 경관은 꽤 커다란 돼지고기 덩어리를
남겼다. 그리고 그의 검은 눈과 끊임없이 혀끝으로 입술을 핥
고 있는 모습에서 그의 흥분을 읽을 수 있었다.
드디어 경관은 포크를 놓고 카운터 끝에 팔꿈치를 괸 한쪽 손
위에다 이마를 얹었다.
「아까 사람이 죽었어.」
그가 말했다.
「네에?」
경관의 눈에는 야간순찰 도중 뭔가가 어둠 속에서 나와 휙하고
모습을 보인 후에 금방 사라져 버린 것처럼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는 아직 그것을 눈으로 쫓고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의 냉정한
그로서는 있을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지.」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설마!」
「정말이야. 그래서 놀랐어. 다울링과 함께 순찰을 하고 있었
지. 그런데 무선연락이 들어왔어. 사람이 죽었다는 흔히 있는
연락이었지. 단지 장소가 하숙집이라 현장에 가서 살펴볼 필요
가 있었지.」
「살인이었나요?」
「내 얘기를 들어 봐. 웬지 기묘한 경험이었어. 우리는 전화를
받았는데 별다른 생각 없이 현장에 달려갔어. 강철공장 근처였
지. 백스터 스트리트의…….」
「험한 곳이군요.」
「하지만 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 현장에 다가가서 백스
터로 가는 모퉁이를 돌자 문제의 집 앞에 구급차가 서 있었어.
갑자기 짚이는 것이 있었지.」
「그렇다면?」
「아무래도 기묘한 얘기야. 난 그 몸집이 작은 사내의 일을 깨
끗하게 잊고 있었으니까. 10년 전 내가 이 가게에 오기 시작한
때를 기억하고 있나?」
「이제 조금 있으면 11년이 되죠.」
「어쨌든 난 그 당시 아직 수습기간이었으니까.」
「네, 지금보다는 훨씬 말랐었죠.」
「그 당시는 경감보를 순찰차에 태우고 내가 핸들을 쥐고 있었
지. 갑자기 그 전화가 와서 우린 그 하숙집에 급히 갔지. 홀에
모인 구경꾼들이 흥분하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
어. 바깥에는 이미 구급차가 도착해 있었어. 우리가 문제의 방
에 올라가자, 몸집이 작은 사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침대에 누
워 있고 구급의가 그 사람의 목에 붕대를 감는 중이었지.」
「찔렸나요?」
「나니, 그자는 스스로 목을 자르려고 했어.」
경관은 목소리를 높여서 웃었다. 새하얗고 깨끗한 치아였다.
「<다음에는 목 뒤를 자르게.>하고 의사가 말했어.」
「그랬군요.」
카운터 담당은 고개를 젓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쨌든 난 의사에게서 그 멍청이를 인수받아 순찰차에 태우
고 지서에 데려갔어.」
「병원이 아니고요?」
「아니, 그자는 조금 피를 흘린 것뿐 큰 상처는 아니었어. 그래
서 지서에 데려가서 유치장에 넣었지. 경감보와 당직 경감보가
날 기다리고 있었어. 난 그때까지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고 생
각하면서 돌아왔어. 내 행동은 일일이 채점되고 있었어. 경감보
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작정이냐고 물었어.」
「그걸 당신이 정하는 건가요?」
「그렇지. 그때는 몰랐었는데 그 남자를 지서에 데려와서 유치
장에 넣기 위해 조서를 받았으니 난 그걸 사건으로 처리해 버
린 셈이었지. 조서에 서명을 하게 할 때는 몰랐는데 그렇게 한
이상 그 처리를 해야 했어.」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경감보, 지금은 휘리 경감이지, 경감을 알고 있
지?」
「알고말고요. 훠리경감이라면…….」
「그가 웃지도 않고 우뚝 선채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저 사
내를 어떻게 할 작정인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우물
거리고 있으니까 경감보가 말했어. <자넨 저 사내를 자살미수
라고 기록을 남겼어. 자네가 자살미수 정도의 사건을 기록으로
남길 정도로 경솔한 사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해버린 일
은 할 수가 없지. 이렇게 되면 저 사내를 정신병원에 보내든가
석방하든가 둘 중의 하나밖에 없어.>라고 말야.」
「그게 정말입니까?」
「법률이 그렇게 되어 있어. 그래서 난 잠시 생각하고서 석방
해야 한다고 대답했어. 그 당시는 나도 젊었거든.」
「그랬군요. 그런데 그 사내는 돈 건가요?」
「잠깐 기다려줘. 경감보는 처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곧 나를 앉혔어. 훠리가 어떤 사내인지 알고 있지? 그를 석방
했을 경우 만에 하나라도 같은 사건을 일으킨다면 그건 내 책
임이라는 거야.」
「설마! 한 사내가 멋대로 죽으려 했다고 해서 대체…….」
「다시 말해서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는 얘기지. 그리고 누군가
가 그걸 빌미로 심술ㄱ은 짓을 하려고 한다면 승진에도 영향을
주게 되지. 요컨대 잘못된 방법이었어. 누군가가 그걸 이용하려
고 할 경우에는 승진을 방해하는 명백한 과실이 되는 거지. 언
제 생각지도 못한 때 보복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런 일로 경력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는 거였어.」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했지요?」
「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어. 그래서 경감보에게 정직하게
말했지. 그런데 그는 (자넨 대학을 나온 사내야 그자가 어떤
자인지 가서 확실히 보고 와.>라고 말했어. 그래서 난 유치장
에 돌아가서 사내와 함께 앉았어. 그는 누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일어났어. 잘 보니까 70이 훨씬 넘어
보였어. 작음 몸집의 아일랜드인이었어. 난 목에 붕대를 감은
노인을 침대에 앉히고 사정을 얘기했지.」
「어떤 얘기를 했나요?」
「조금 심리학을 응용해 보려고 생각했어. 노인의 마음속을 들
여다보려고 한거지. <저, 노인장.>하고 난 말을 붙였어. <실은
당신의 일로 좀 곤란하게 됐어요.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겠소.
대체 왜 자살 같은 걸 하려고 했죠?> 다시 말해서 난 자살을
시도한 원인을 안다면 석방 후에 또 할 것인지의 여부룰 짐작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좋은 점에 착안했군요.」
「그런데 노인은 전혀 응해 오지 않았어. 아무것도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어. 하는 수 없이 잠시 세상 얘기를 하는 사이에
상대도 점점 긴장이 풀려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계 됐지. 노인은
홀몸인 것 같았어. 아이들은 모두성장해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고, 부인은 벌써 세상을 떠났으며, 그는 한 달에 몇 달러씩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지. 그러는 사이에 몸도 쇠약해지고
창 밖만 바라보고 사는 생활에 진저리가 난 모양이야. 말뜻이
잘 전달이 안 되는데, 요컨대 혼자서 사는 노인이 친구도 없고
어디에서 편지도 안오고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그저 매일을
지내는 것뿐인 생활이지. 알겠나?」
「알겠어요. 나이를 먹는다는 건 비참한 일이죠.」
「노인의 얘기가 너무 실감이 나서 난 그가 자살을 시도한 것
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지. 즉, 노인에게는 이제 살아갈 이
유가 아무것도 없었던 거야. 그 말만은 잊을 수가 없어. <나한
테는 이제 아무것도 기다릴 희망이 없어.>라고 그는 말하는 거
야.」
「그랬군요. 그런 노인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 한마디에 난 진거야. 그때 내가 뭐라고 말할 작정
이었다고 생각하나? 이거라면 걱정 없다고 생각했지. 알겠나,
이 의미를?」
「네.」
「난 달리 어찌할 수가 없어서 노인에게 이렇게 말했어. <노인
장, 난 당신을 정신병원에 보내야 합니다.> 그러자 그는 침대
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으면서 애원하기 시작했어. <난 미치지
않았어. 난 미치지 않았다구.>라고 말야. 그리고 정신병원에 보
내는 것만은 봐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난 노인이 완전히 정상
이라는 걸 알았어. 그래서 아주 곤란하게 된거지. 노인은 부탁
이니 풀어달라고 했어. 하지만 난 이렇게 말했어. <이봐요, 노
인장. 당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또
이런 일을 하면 내가 궁지에 몰립니다.> 그리고 사정을 설명했
지. 경감보가 내게 설명한 것과 똑같았지. 그랬더니 불쌍한 노
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더군. 난 그때를 결코 잊을 수가
없어. 그는 침대에서 이렇게 말했어. 노인의 말투를 흉내내는
것은 어렵네만, <경찰 양반.> 그리고 아이처럼 고개를 저으면
서 <난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아요.>라고 말야.」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말야, 에이브람즈. 지금 생각해 보면 믿을 수 없지만 노
인이 말하는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난 완전히 인정에
끄려 버렸어. 지금이라면 아마 그런 일은 하지 않겠지만 당시
는 나도 젊어서 노인을 석방해 주기로 한 거야. 왜 그렇게 했
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정했지. 그리고 경감보에게 보
고를 하러 갔는데 그때 그의 얼굴은 평생 잊을 수가 없어. 분
명히 내가 미치기라도 했다고 생각했겠지.」
「그럼 노인은 석방이 됐군요?」
「아, 나도 잠깐 동안은 그게 마음에 걸렸지. 당시는 경감보로
승진할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 부담스런 일을 머리 위에 매
달아 놓았기 때문에 언제 그게 떨어질지 걱정이었지. 그런데 2
주일이 지나자 다른 일에 정신을 뺏겨 난 그 일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말았지.」
경관은 남은 음식을 보았다. 갑자기 그 의문에 잠긴 시선이 떠
올랐다. 그는 자신이 얘기하지 않은 뭔가를 생각해 내고 미소
를 떠올렸다. 카운터 담당은 가만히 기다렸다. 바람이 불어서
바깥 간판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다.
드디어 경관이 얼굴을 들고 그런 얘기를 시작한 것을 조금 당
혹해 하고 후회하는 듯이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그게…….」
경관은 질문의 비중을 부정하는 듯한 어조로 계속했다.
「조금 전까지 난 순찰차에 타고 있었어. 다울링과 함께 말야.
그때 백스터 스트리트로 가라는 연락이 들어왔어. 모퉁이를 돌
아서 구급차를 보는 순간 난 모든 것을 생각해 냈어. 차에서
내려 선물 안으로 들어가서 홀에 서 있는 구경꾼의 무리를 봤
을 때 난 그 노인의 방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어. 생각한 대로
그들은 이층을 가리켰어. 계단을 올라간 뒤 그 방에서 내가 처
음으로 한것은 면도칼을 찾는 일이었어. 요전에는 면도칼이 마
루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은거야. 내가 침대에 다가서자 의사가 노인에게 청진기를 대
고 있었어. 노인은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숨을 거두는 순간이
었어. 이번에는 수면제를 먹은 거라고 생각했지. 이걸로 경감보
가 또 10년 멀어진다고 생각했지. 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마음속으로 후회하면서 거기에 서 있었어. 의사에게 사인이 어
떻게 되는지 물으니까 단순한 노쇠에 의한 죽음이라는 것이었
어. 그 노인은 내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내 얼굴을 기
억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어. 난 울고 싶어졌어. 아무튼
아주 더러운 방이었고 퀴퀴한 냄새도 나더군. 그 딱한 노인은
그런 방에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버틴 거야. 나 한 사람을 위
해서…….」
그는 포크를 뒤집어 접시에 놓고 오버의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
다. 잠시 동안은 카운터 담다의 눈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얼
마후 그가 말했다.
「이상한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나?」
「훌륭한 사람이군요.」
「하지만 내일 또 같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면, 난 그런 사내를
위해서 책임을 지고 싶지는 않아.」
「그거야 뭐, 자기 몸이 중하니까요.」
「그렇지.」
경관은 일어서서 카운터 너머로 계산을 마치고 오보 깃을 목도
리를 둘렀다. 그리고 바깥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얘기지?」
「정말 그래요.」
카운터 담당이 맞장구 쳤다.
「아무래도 이상한 얘기야.」
경관이 말했다.
경관은 문으로 가서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밤의 어둠과 바
람으로 흔들리는 간판의 희미한 빛을 보았다.
「그럼 잘 자게.」
그렇게 말하고 그는 찬바람 속으로 나갔다.
아서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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