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살인중독증 homicidal add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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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편 ] 살인중독증
앞으로는 침실에 사체를 두어야 한다. 마침내 거실이 가득 차
버렸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드디어 올
날이 왔다는 건 충격이다. 이제 전혀 빈 공간이 없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네 줄로 사체다 쌓여 의자와 발을 딛을 작은 공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꽉 찼다. 텔레비전까지 가지고 나와 버렸다.
텔레비전을 치우다니 견딜 수 없었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었
다. 침실까지 사체를 두어야 할 때를 가슴 답답하게 생각하면
서 텔레비전을 침대 발치로 가지고 갔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실은 이제 꽉 찼다.
끝이다. 다 써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운명에 따른다. 이대
로 살인을 계속해 간다면 저 수녀원장이 주교에게 말했듯이,
사체는 당연히 침실로 날라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살인은 계속해야만 한다.
오늘 밤 관리인 브라운을 죽인다면 사체는 침실 구석의 옷장
옆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처녀지의 개발이다. 그렇지만 이 일
은 섹스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전혀 그렇지 않다. 당연히 숨겨
진 의미 따위도 없다. 상징도 아니다. 다만 살인이라는 순수하
고 슬픈 일이다.
브라운은 쓰레기통을 로비에 굴러다니게 해서는 내 방을 소음
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계단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치우
는 법이 없다. 나는 여러 번 그자에게 이런 식으로가 아니라
저런 식으로 해달라고 부탁도 하지만 여전히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체한다. 듣지 못한 체, 달리 방법이
없는 체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3층에 갈색으로 변한 저저분한 귤껍질이 네 개나 떨
어져 잇는 것을 보았다. 나 같은 성격의 소유자는 자신이 직접
뭔가 할 수도 없고 여기서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사를 하게 되면 먼저 사체를 처분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을 전
부 끄집어내는 건 정말 큰일이다.
어쨌든 브라운은, 아니 브라운의 시체는 오늘 밤 침실에서 자
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가공의 살인이다. 나는 현실의 대량 살인마는 아
니다. 나의 살인은 상상의 살인으로, 일 년 간 내가 이 곤란한
현실 대응책에 빠져든 이래 상상의 사체가 천천히 우리 집 공
간을 메우기 시작했다. 귀찮게 구는 판매사원, 사람을 안달하게
하는 통행인, 다른 사람의 건강을 신경쓰지 않는 회사 동료. 나
는 머릿속에서 복잡한 살인을 하고 몸으로는 그 사체를 이리
날라오는 팬터마임을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그들 사체-모두
곱게 죽은 모양이다-를 여기에 두고 있다. 이 환상 덕분에 난
겨우 이 끔찍한 도시생활을 견딜 수가 있다. 마음을 초조하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추방하지 않고는 난 살아가지 못한다.
물론 이 환상은 위험한 수단이어서, 어느새 난 위험한 선을 넘
어 자신이 진짜 이 사람들을 살해했다고 믿어 버리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균형을 맞추려면 이 방법밖
에 없다.
이 환상을 사실답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자질구레한 부
수작업이 필요하다. 거실에 있던 것 모두-의자와 발판만을 제
외하고-를 치워 버리기가 가슴 아팠지만 의지를 가지고 해냈
다. 이러한 가정을 유효히 하자면 얼마간의 희생이 따라야 하
는 법이다. 손목이나 팔에 기술을 습득하는 오랜 각고의 노력
없이 바이올린을 켤 수는 없다. 성가신 사무처리 절차를 연구
하지 않고는 현직장의 정식사원이 되지 못한다. 상상의 사체를
책임있게 처리하는 일 없이 대량 살인마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아치형의 아파트 출입구에서 더러운 걸레로 내 차의 앞창을 닦
는 저 게으른 놈. 놈은 내가 여섯달 전에 죽여 주었지만 아직
저기 잇다. 오늘 아침에도 열린 창으로 내가 15센트밖에 주지
않았다고 지독히 무례하게 군 저 남자. 그러나 놈의 걸레조각
은 내 눈에 비치지 않아 무례함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웃어줄
수 있다.
결국 이런 것이다.
<너 같은 놈은 벌써 존재하지도 않아. 반년 전 너를 죽이고 나
서 현실세계 속의 네 행동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다. 네가 가
지고 있는 걸레는 코딱지만한 얼룩에 지나지 않고 너의 무례함
은 노래다. 나는 그쪽 길에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너의
여섯번째와 일곱번째 늑골 사이에 예리한 칼을 꽂아 사체를 트
렁크에 담고 피 한방울 흘리게 하지 않은 채 내 방으로 옮겨
온 거야. 사실 너는 내 아파트 속에, 언젠가 내 무릎에 냉수를
쏟은 호람 식당의 웨이트리스와 내게 정신분열증의 징후가 있
다고 떠든 의사 사이에 누워 있다. 너는 이제 내 것이다. 알았
어?>
아니, 알 리가 없다.
이 불쌍한 사내-웨이트리스와 의사 그리고 다른 놈들 모두-는
이 일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두 시간쯤 전에 나는 브라운을 그의 방에서 죽였다. 놈이 문
열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브라운, 난 이제 참을 수가 없어. 당신은 정말 무책임해. 귤껍
질만이 아니야. 화잘실 수도꼭지가 헛돌았을 때의 변명, 로비를
청소할 때의 지독한 소독약 냄새. 어디 그뿐인가? 무엇보다 날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당신의 그 방자한 태도야. 내가 간
간한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인정하려
들지 않아. 내 필요를 무시한 것은 인간성을 무시하는 거야.>
나는 비상시에 사용하는 정교한 22구경 피스톨로 그자의 관자
놀이를 쐈다. 사체를 질질 끌어 문을 닫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는 하이든의 교향곡 101번 다장조가 흘러 나왔다. 그자에게 클
래식 음악 감상의 취미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자에
대한 생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 애 침대 발치에
누워 있다. 그리고 이따금씩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있는 듯이 보
인다.
오늘 회의중에 담당 여의사가 두 번이나 내 손을 쳐서 방심하
고 있던 내 의식을 깨웠다. 아무래도 내가 지독한 노이로제에
걸려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회의
중 내 주의력이 떨어진 것은, 그녀가 몇 주 전에 질식사당하여
내 아파트 안에 죽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떻게 그녀에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왜 그런지 브라운의 사체는 묘한 냄새를 풍긴다. 이건 처음 있
는 일이다. 내가 정돈을 하기 좋아한다는 건 자타가 인정하는
바인데, 자기 아파트에서 묘한(물론 담배와 커피 이외의)가 난
다는 것은 참지 못한다. 내가 날라와 쌓아둔 사체는 모두 썩을
걱정은 없는 것이다.그렇지만 브라운의 사체는 다르다. 점점 냄
새가 지독해져서 어젯밤에는 잠들 수 없었을 정도다. 가정용
냄새 없애는 스프레이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밤 돌아와
보니 상태는 더 고약해졌다.
침실에 사체를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거였는데 하고 후회도 해
보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여기 말고는 달리 방도 없고, 욕실
에는 두고 싶지가 않다. 역시 한계가 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참지 않으면 안 된다. 잠시 참고 있는 사이에 익숙해지든지 냄
새가 없어지지 않을까?
브라운의 사체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결국 냄새를 참지 못하
게 된 것이다. 그러나 될 수 있는 한 그런 일은 하고 싶지가
않다. 위험한 전례를 만들어 이제까지의 패턴을 깨게 되기 때
문이다. 사체를 처분해 버린다면 브라운의 죽음은 상징이 아니
게 되고, 또 브라운을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체들도 그렇게 해
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죽일 사람
들의 사체까지도 말이다. 결국은 나의 이 사업은 자멸의 위기
에 처한다. 내가 한 일에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브라운을 불러 상상의 브라운의 사체를 같이 치우
는 일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그만두자. 재미있는 일
이긴 하겠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혼자 할까, 이대로
둘까?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 며칠 그자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이제 큰일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이, 브라운의 사
체를 밖으로 끌어내어 내일 아침 쓰레기 치우는 사람에게 가져
가도록 하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걱정은 나의 이제까
지의 패턴이 깨졌다는 것, 그리고 또하나 소방수 같은 방식으
로 끌어내갈 때 기묘하게 무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죽
인 사람들의 사체 가운데서는 정말 이상하게 진짜 같다.
상상의 죽음 속에서조차 이 남자는 -바로 이 남자답게-내게
고민거리를 준다.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의 경관이 와서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뒤에는 아파트 주인이 기웃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심문을 받는 동안, 기회를 봐서 경관의 주의를 딴 데로 돌려
두 사람을 죽여 버리자, 그래서 이 고통에 종지부를 찍자고 생
각했다. 그러나 그다지 쉬울 것 같지가 않다.
거실에 계속 사체를 쌓아두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던 것이 유
일한 실책이다. 오래된 사체을 처분하고 대신 새것을 쌓아두는
게 좋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데, 그러나 이제 너무 늦었다
고 경관이 말했다.
배리 N. 맬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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