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되는 주식 용어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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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용어모음과 설명 * 가격역지정 주문 (stop order) 투기성 투자를 즐기는 투자자가 시세가 매매위탁 당시의 시세보다 상승하여 자기의 지정가격을 넘어설 때는 지체 없이 해당 주식을 매도할 것을 위탁하는 것 . 역지정가주문이라고도 한다 . 역지정가주문은 투자자의 시세관에 따라 어느 종목의 주가가 어느 일정한 가격 주문을 넘어서면 폭등할 것으로 믿거나 일정 가격 수준 이하로 내려서면 폭락할 것으로 예상되었을 때 그 큰 장세에 의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이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 그러나 이것은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공정가격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 증시에서는 법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 * 가격우선의 원칙 (priority of best quotation principle) 증권시장의 경쟁매매에 있어 호가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으로서 파는 경우는 낮은 가격을 , 사는 경우는 높은 가격을 우선한다는 말이다 . 시간우선의 원칙 , 수량우선의 원칙과 함께 쓰인다 . * 가수급 주식을 사려는 자금이나 팔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자금이나 주식을 빌려 사고 파는 이른바 공매를 말한다 . 이는 신용거래를 통하여 적절히 도입되면 매매량과 환금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주가의 안정에도 크게 도움을 주지만 가수급이 과다하면 과당 투기를 유발할 부정적인 측면을 역시 가지고 있다 . * 가장매매 (wash sale) 실제로 주식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주가를 조작하거나 투자자 자신의 손실을 회피할 목적으로 하는 매매 거래 . 이는 일반투자자들을 속이기 위하여 매매거래가 활황인듯이 보이게 조작하는 시세조종으로서 사고 파는 행위를 혼자 했을 경우 가장매매 ,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다른 경우를 통정매매라 한다 . 법으로 금지됨 . * 간사회사 (manager) 유가증권의 발행인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유가증권의 인수와 모집 , 그리고 매출주선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회사로서 증권회사 , 은행 , 단자회사 , 종합금융등이 있다 . 발행되는 유가증권은 전량 혹은 일...

추리소설 갑옷의 죽음 death of defense

[ 단 편 ] 갑옷의 죽음                                      








          월요일 아침 10시  15분에 모리스 슬레이터는 조 스캐트모어를 

          처음 만났다. 같은 날 오후  2시에 또 한번 그를 만났고, 그 후

          약 20분  지나서 그를 살해할  결심을 했다. 어떤 사람이  처음 

          만남 상대를 만난 지  4시간 5분만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

          하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심상치 않은 이유가 숨어  있을 것이

          다.

          슬레이터는 그날 아침에도  10시 정각에 카르브의 저택에 도착

          해서 고용인 출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13년 동안, 병으

          로 결근한 날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판에 박은 듯이 

          1분의 오차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카르브의 개인비서이면

          서 으의 유럽 갑옷의 관리자인 슬레이터는 정문 현관을 사용할 

          권한이 있었다. 그는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였

          다. 그러나 정문  현관으로 출입하는 것 때문에  다른 고용인들

          의 시기를 받고 싶지가 않았다.

          안개비가 내리는  무덥고 우중충한 날씨였다. 슬레이터의  가냘

          픈 몸은,  열쇠를 꺼내 열쇠구멍에  찔러 넣는 동안 비에  젖은 

          참새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사방을 싸고 도는  회색 안개

          는 카르브의 웅장한 저택을 다른 때보다 더욱 중세의 성곽처럼 

          보이게 했다.  슬레이터가 갑옷실의  커다란 벽난로 앞에  일단 

          자리잡으면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되어 버려서 그 자신이 만

          들어낸 16세기에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카르브의 새로운 단검 수집품이 있는 곳으로 빨리 가려고 

          했다. 새 유리 케이스에 1300년대의 단검을 비롯하여, 바실라드

          ·키용·부와나르·바이오넷 그리고 17세기 후반의 스틸레토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진열해 둔 곳이었다.  출입구 문에 손을 

          댔을때, 앞마당 쪽에서   쇠붙이가 마주치는 소리와  백치를 연

          상시키는 천한 웃음소리에 섞여 거친  욕지거리가 들렸다. 그는 

          일순 주저하다가  어름어름 안개  속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서서히  굴러오는 트럭에  의해 진로를 방해받았다.  트럭은 

          건물의 왼편과 갑옷실로 통하는 이중문 쪽으로 꺾는 중이었다.

          슬레이터는 트럭 뒤쪽으로 어설프게 다가갔다.

          가죽잠바를 입은 억센  사나이가 진흙탕 속에서 콩깍지 모양의 

          흉갑을 들어올리는  중이었다. 가까스로 쳐들더니 트럭의  적재

          함에다 둔탁한 소리가  나도록 힘껏 내던졌다. 다른  남자가 갑

          옷의 일부를 어깨에  메고 힘겨워하면서 나왔다. 강철  다리 하

          나가 떨어져  뒹굴었고 또  팔이 나가떨어졌다. 쇠장갑이  비에 

          젖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쳐서 몇 조각으로 떨어졌다.  두 사

          나이는 투덜대면서 흩어진  부분을 긁어 모아 트럭으로 거칠게

          던져 담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강렬한 공포가 순식간에 슬레이터를 휩쓸었

          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뛰어가서 남자가  들고있는 강철 쇠장

          갑의 관절부를 잡았다.

          「이리 주십시오!」

          그는 가쁜 숨을 쉬면서 말하고 가죽 잠바의 사내로부터 그것을 

          비틀어 뺏으려 했다.

          「이리 주세요.」

          가죽 잠바는 5피트  7인치 가량의 키였으나, 억센  체격으로 마

          치 석상처럼 슬레이터의  머리 위에 치솟아 있었다.  그 남자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쇠장갑을 잡아채었다. 그 바람에  슬레이터

          는 공중으로 날아가서 철썩하고 둥근 돌기둥에 부딪혔다.

          「뭐야, 이건?」

          가죽 잠바는 안개  속에서 슬레이터를 보았다. 다른  남자 하나

          가 껄껄 웃었다.  매부리코의 세번째 사내가 여러가지  칼을 한

          아름 둘러메고 현관에 나타났다.

          슬레이터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진정하슈, 꼬마 아저씨.」

          가죽 잠바가 말했다.

          「경찰을 부를테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냐?」

          「나는 카르브 대령님의 비서요.」

          「카르브가 누구지?」

          슬레이터는 칼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사내가 그것을 콘크

          리트 계단에 내동댕이쳤다. 메고 있던  칼들이 철커덕철커덕 요

          란한 소리를 냈다.

          「이것 놔, 조그만 게!」

          가죽 잠바가 슬레이터의  외투깃을 움켜잡더니 1피트쯤 공중으

          로 대롱대롱 쳐들었다. 누군가 껄껄 웃었다.

          한평생 몸에 배어  있던 굴종심과 경계심이 슬레이터에게서 그 

          이상의 반항심을 빼앗아  갔다. 사내의 손아귀 속에서  느는 소

          금물에 잠겼다 나온 배추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내려줘, 부탁이야.」

          슬레이터는 애원했다. 간신히 둥근 기둥에다 몸을 가누었다.

          「당신 뭘 먹고 살지, 꼬마 아저씨?」

          억센 남자가 적의 없는 말투로 물었다.

          「카르브 대령님이 당신들을 불렀소?」

          「카르브니 뭐니 하는 놈은 잘 몰라. 그보다도  아저씬 뭘 먹고 

          사느냔 말요.」

          「그렇지만 여기는 카르브 대령님의 저택이야.」

          슬레이터는 거의 울부직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 몸, 들어보지도 못했다니까.」

          가죽 잠바는 한패에게 손을 흔들어댔다.

          「빨리 운반해라! 이 잡동사니들을 4시까지는 깡그리  운반해야 

          된단 말야.」

          슬레이터는 긴 복도로 뛰어 들어갔다.  안개가 방안까지 스며들

          어 있었다. 여러 틀의 갑옷이 시체처럼 돌바닥  위에 둥굴고 있

          었고 나무상자가  흩어져 있었다.어렴풋이 보이는 한사람이  17

          세기 창기병의  철모를 나무상자에다 처넣고 있었다.  사다리를 

          올라가서 색실을 섞어 짠  천으로 장식된 벽에 걸려 있는 방패

          와 창을 벗겨 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슬레이터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기  시작했다. 앞단추를 풀어헤

          쳐 외투를 휘날리면서 그는 갑옷들 사이를 빠져나와 좁은 복도

          를 지나 자기 사무실을 향해 뛰었다. 숨막힐  듯한 어떤 예감과 

          싸우면서.

          사무실 문은 자물쇠가 잠긴 채 그대로 있었다.  그는 한순간 숨

          이 탁 놓이는  것을 느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1460년대의 고

          딕식 검은 갑옷은  책상 옆 방 한구석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

          것은 카르브가 충실한 관리인으로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슬레이

          터에게 상으로  준 것이었다.  깜박이지 않는 퀭한  눈구멍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슬레이터의 손은 연분홍

          빛 참새처럼  책상 위를  어지럽게 움직였다. 그러나  카르브의 

          메모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책상 위는 토요일  아침에 

          두고 간 그대로였다.

          방을 뛰쳐 나와  복도를 달린 다음, 어두컴컴한  나선형 층계를 

          뛰어올라가서 다시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달려 막바로 카르브

          의 서대의 떡갈나무로 된 이중문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가슴속

          에서 솟아오르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슬레이터의 노크는 가냘펐다.

          「들어오시오.」

          천둥같은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카르브 대령의 목소리

          는 아니었다.

          슬레이터는 방안에 들어서서 조용히 문을 닫고 널찍한 서재 겸 

          서고를 둘러보았다. 슬레이터의 시선에 풍부한  광택을 내는 운

          에 익은 떡갈나무  경판, 천으로 된 벽장식, 15시기의  창과 낫, 

          18,9세기 영국 보병이 쓰던 짧은 창이라든지  새깃이 달린 창이 

          보였다. 그의 시선이 방 한가운데 서서 골프채를  잡고 있는 스

          포츠 재킷 차림의  거인에게 멈췄다. 거인은 고개를  들려고 하

          지도 않고  골프공을 융단 위로 굴려서  방바닥에 놓인 투구의 

          목가리개 부분을  통해 아래턱이 빠진 강철  입 속으로 넣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슬레이터인가?」

          「네.」

          슬레이터는 대답했으나 방안을  가득 채우는 거인의 존재로 좀 

          어리둥절했다. 40세가 되어도 팀에 넉넉히  복귀할 능력을 가진 

          왕년의 미식축구  스타플레이어 같은 체격이었다. 6피트  3인치

          나 되어 보이는 골격에는 아직도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카르브 대령의 비서 모리스 슬레이터입니다.」

          자기의 다리통만큼은 되어 보이는 손목과 검고 빳빳한 털로 뒤

          덮인 손가락이 골프채를  움직이고 있는 모양을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모가 난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잡히고  이마는 좁

          게 생겼다.

          「나는 조 스캐트모어, 시의  집행관이야. 우리의 임무를 잘 알

          고 있겠지? 대령의 저당물건을 처분하는 중이야.」

          「카르브 대령님을 만나야 겠어요!」

          스캐트모어는 다른 공을 살짝 쳤다. 공은 순순히  융단 위를 굴

          러서 목가리개를 기어올라 투구의 입 속으로 툭 떨어졌다.

          「대령은 내일 아침까지 웨스트사이드의 교회에 있겠지.」

          스캐트모어가 입을 열었다.

          슬레이터의 목구멍에서 기묘한 소리가 났으므로 그가 돌아다보

          았다.

          「미안하네, 난 자네가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알고 있다뇨, 뭘?」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안 보나?」

          슬레이터는 스캐트모어의 큼직한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인께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거야. 일요일 새벽 1시쯤  운명

          하셨다네.」

          슬레이터는 검은 가죽의자 속에 거의 모습이 감추어질 만큼 쓰

          러져 들어갔다.

          스캐트모어는 세번째 공을 주시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참 안됐군, 자네. 벌써 13년이나 여기 근무하고 있었다지?」

          「그럭저럭 14년입니다.」

          슬레이터는 가냘픈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잔 하는 게 어때?」

          스캐트모어는 책상 위의 위스키 병을 턱으로 가리켰다.

          「영감님이 좋은 술을 갖고 있던 걸.」

          「고마워요. 그러나 전 술을 못해요.」

          슬레이터는 골프  공이 투구의 딱 벌어진  입 속으로 떼구르르 

          굴러 들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얼른  시선을 돌렸

          다. 눈 앞의 벽이 희끄무레하게 흐려지는 듯했다.

          「어떨게 하실 건가요? 스캐트모어 씨?」

          간신히 얼버무린 말투로 슬레이터가 말했다.

          「어떻게 하다니?」

          스캐트모어는 얼굴을 돌려  슬쩍 인상을 쓰며 슬레이터를 내려

          다 보았다.

          「아아, 자네는 걱정할  것 없네. 뭘 걱정하나,  슬레이터? 카르

          브같은 사람 밑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데……. 내일 은행으로 

          오게. 뭐라도 일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

          「대령님의 수집품들을 저 사람들이 내던지고 있는데요.」

          스캐트모어는 골프채 끝으로 투구를 탁  때렸다. 그것은 융단위

          를 뒹굴더니 철썩 하면서 벽에 부딪쳤다. 그는  위스키를 한 모

          금 들이키고 나서  슬레이터를 이상하다는 듯이 꼼꼼히 뜯어보

          았다.

          「대지급으로 실어내고 있는 거야, 슬레이터」

          스캐트모어는 크게 숨을  내쉬고 창가로 걸어가서 바깥을 내다

          보았다.

          「2주일 후면 이 곰팡내 나는 건물은  송두리째 사라지는 거야. 

          그 다음엔 뭐가 들어설 것 같은가, 슬레이터 35층 건물이야. 현

          대식 아파트란  말일세. 방세는 80달러.  방마다 선 룸이  있고, 

          그리고 저 건너편엔 슈퍼마켓이 세워지지.」

          「그렇지만 카르브 대령님의 유지에 어긋나는 걸요.」

          슬레이터가 말했다.

          스캐트모어는 천천히 얼굴을 돌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유지라니, 뭐야?」

          「대령님은 입버릇처럼  밀씀하셨지요, 스케드모어  씨. 여기를 

          공공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이었다구요. 그리고  저는 관리인으로

          여기 남게 될 거구요.」

          스케드모어는 책상을  끼고 돌아 슬레이터에게 다가갔다.  그리

          고 의자에 덧씌우듯 우뚝섰다.

          「나도 대령님을 좋아했지. 그렇지만 그는 좀 괴짜였어. 그렇지 

          않나? 이렇게  중세기 골동품을 모으는  것을 보면 말야.  저런 

          낡아빠진 잡동사니가 다 뭐란 말인가? 이봐,  만약 여기를 박물

          관으로 공개해 봤자  입장객이 얼마나 들 것  같나? 그야 한두

          명은 있겠지. 보나마나 날마다 적자의 연속일 거야.」

          「하지만 대령님은 이런 걸 바라지는 않으셨어요.」

          슬레이터는 안경을 벗어서 손수건으로 렌즈를 닦기 시작했다.

          「이 얼마나 무례한…….」

          그는 입을 다룸고 얼굴을 돌렸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짓이냔 말입니다.」

          스케드모어의 뭉실한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한 걸음 물러서더니 

          책장에 기대었다.

          「호, 자네의 편한 일자리가 없어져 버린다, 그런 말씀이군.」

          상대편이 불쑥 화를  내는 바람에 어리둥절해진 슬레이터의 목

          소리는 아부하는 듯이 부드럽게 바뀌었다.

          「그래요, 스케드모어 씨. 저는  여기서 하는 일이 참으로 즐거

          웠습니다.」

          그 목소리는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랍니다.

           스케드모어는 술잔 가득 술을 따르더니 오랜 세월 익숙해진 손

          놀림으로 단숨에 들이켰다.

          「동정은 하네.  그러나 여보게, 무슨  일이든지 형편에 따라야 

          할 게 아닌가? 보게나, 거리 한복판에  50에이커나 되는 금싸라

          기 같은 땅이  자리잡고 있단 말일세. 그걸  보잘것없는 쇠붙이

          를 보관하는 데 쓰다닌  말이나 되나? 납세자의 돈을 낭비해도 

          유분수지. 그건 자네도 인정해야 해.」

          슬레이터는 말이 없었다. 스케드모어는 또 한 잔  가득 술을 따

          랐다. 얼굴이 점차 붉어졌다. 솟아로느는 흥분과 자기만족에 도

          취된 듯 책상 둘레를 뒤뚱뒤뚱 돌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조금  애를 먹었지만 말야. 그렇지만  이 비

          상한 머리를 써먹었지. 대령도 갈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서 그

          의 딸한테 얘길  걸어 보았지. 영감님은 따님에게  전재산을 물

          려주었으니까. 유서에는 이곳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라는 확실한

          지시는 적혀 있지  않았지. 오직 이 저택을  따님에게 남겨준다

          고 쓰여 있었단 밀일세. 영감님은 이 저택에  대해서 따님도 자

          기와 똑같은 생각을 하리라고만 믿었던 거야.」

          스케드모어는 또 위스키 병을 들었다.

          「이봐, 슬레이터.  영감님의 따님인 낸시의 본심도,  이런 저택

          은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던 모양이더군. 그렇다고

          그녀를 탓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지만 말야. 거직말이 아니야. 

          도대체 자기 자식의 마음  속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부모가 세

          상에 얼마나  있을지? 어쨌든 내가  35층 아파트와 슈퍼마켓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니 그녀는 박묵관 얘기는  입 밖에도 내지

          않더군.」

          스케드모어는 킬킬 웃었다.

          「한마디도 말야.」

          「알았습니다.」

          슬레이터는 일어섰다.

          분 쪽으로 돌아나가려는데 스케드모어의 억센 팔이 슬레이터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떤가? <시간은 흐르는 거다>라고 말

          야. 은행으로 오게. 우리들은  항상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을 필

          요로 하고 있네. 자네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필요

          하지.」

          평소 지나칠 종도로  조심스럽고 은근하며 때로는 아부하는 듯

          한 태도마저 보이던  슬레이터는 스케드모어의 헤어질 때 친절

          한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스케드모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방을 나서서  으스스하고 추운 복도의 음침한 어둠 속

          으로 사라져 갔다.


          슬레이터는 아래층 좁은  사무실에 한동안 틀어박혀 진열실 쪽

          에서부터 끊임없이  울려오는, 예술을 더럽히고 신성을  파괴하

          는 견딜 수 없는  소음을 씻어 버리려는 헛된 노력을 거듭하고 

          있었다. 가슴속이 휑하니 뚫려서 그곳을  찬바람이 휩쓸고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소리들이  마치 끝없는 전기 쇼크처럼  그의 몸속을 파고들

          고, 이어서  자기자신이 마치  무너져내리는 거대한 건물의  한 

          부분인 듯한 착각조차 일으키게 되었다.

          절망감과 지독한 우울에 사로잡히자 그는 견딜 수 없어서 집에

          다 전화를 걸었다.

          「셀마?」

          「모리스!」

          셀마는 큰소리를 냈다.

          「어디 불편하세요? 감기라도 걸렸어요?」

          그는 근무중에 전화를 거는 일이 없었다.

          「카르브 대령님이 돌아가셨어,  셀마. 일요일 아침에 돌아가셨

          다더군.」

          「어머, 정말이에요?」

          「그렇지만 대령님은……. 아니, 여기는 박물관이 되지 않을 거

          래. 모두 들어내고 있는 중이오.」

          「편히 쉬시길…….  훌륭한 분이셨어요.  여보, 하지만  어쩐지

          기쁜 생각도 들어요.」

          「셀마!」

          「이젠 당신도 좋은 직장을 잡아서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날

          마다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게 되겠군요.  전 이젠 그림자하고 

          결혼한 것 같은 생활엔 진저리가 나요.」

          진열실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서,  그는 엉겁결에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유리 케이스다!  단검을 넣어둔 새 케이스겠지.  그

          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1460년의 고딕식  갑옷이 검은 눈구멍으

          로 그를 원망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슬레이터는 갑옷으로  다가가서 눈구멍 속을 들여다보았다.  순

          간 주위의 모든 소음들이 정지하고,  한없는 행복감으로 가득한 

          고요가 그를 감쌌다.  그리고 14년 전 처음으로  카르브 대령을 

          방문하던 날, 이 갑옷 옆에 서던 때가 회상되었다.

   

          모리스 슬레이터는 웬만한 살인범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조용한 형식의 폭력이라도, 폭력이

          라 이름 붙는 것에 대해 겁을 내는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14세 때  키가 4피트 6인치였고  몸무게는 126파운드였다 30년 

          후 그의  생활은 몸무게가 1파운드  늘었고, 키가 4분의  1인치 

          줄어든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슬레이터는 몸집이 작을 뿐만 아니라 마치 참새처럼 약질로 생

          겨 먹었다.살갗은 희고 연약해  핏줄이 비쳐 보일 정도였다. 복

          장은 빈틈없이 깔끔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도마뱀 가죽과 같이 

          그를 그 환경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말하는 태도

          도 또 그 모습과 꼭 어울리게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그의 성

          격은 한마디로 말해서 신중 그것이었다.

          그에게 화를 낼 수  있는 감정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죽은 그의 어머니라면 그가  참을성 없고 신경질적이라

          는 것을 지적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잘의 슬레

          이터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꼬마야, 꼬마야, 난쟁이!」

          코피를 흘리며 집으로  도망쳐 가는 슬레이터를 쫓아 몰려다니

          며 놀리던 소년들이라면,  그가 굴욕에 대해 쓸데  없는 노여움

          을 터뜨리던 일이라든가, 그가 얼마 후부터 아무  대꾸 없이 도

          망치는 태도로 변해  버린 일이라든가, 마침내는 사람  눈에 띄

          지 않는 존재로 변해 버린  일 같은 것을 얘기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증언을 요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내 셀마는 키도 몸무게도 그보다 훨씬 컸다.  체격이 큰 사람

          이 싫어서 그와 결혼한 셈이었다. 그의 편에서  볼 때도 아내의 

          덩치가 ㅡ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셀마는 남편이  가끔 신경질

          을 내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것은  귀엽고 재미나는 구경거리

          고, 언제나 뒤끝이 없는  신경질이었다. 신경질이 날 듯한 징조

          가 보이면 그녀는  얼른 슬레이터를 지하실에다 몰아넣고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는 지하실에 홀로 남아서  여러가지 가

          정요법에 흥미를 가진 셀마가 특별히 준비해 놓은 물건들을 집

          어던지고 걷어차고 하면서 화를 풀곤했다.

          이런 식으로 슬레이터는  그의 노여움과 증오와 공포의 대상인 

          이 세상과는  송두리째 격리된 생활을 오랜  세월 보내고 있었

          다. 그래서 건강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은 그의  안중에도 없

          었다. 즉,  엠파이어 그테이트  빌딩이라든지, 재너럴  모터즈의 

          신기록 샅은 것으로  상징되는 문화 속에서 자신을 털끝만큼도 

          순응시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카르브  대령 밑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그의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렸다.  다시 세상에 태어난 듯한  행복감이 그에

          게 찾아들었다.  카르브 저택에 첫출근을  하던 날, 슬레이터는 

          수집품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1460년대으  고딕식 갑옷 옆에 

          섰을 때 뜻밖에 그 무시무시해 보이는 강철 덩어리가 자기보다 

          겨우 1인치 밖에 더 크지 않다는 점을 발견해 냈던 것이다.

          처음에는 모조품이  아닐까하고 의심했다. 그래서 카르브  대령

          에게 물어보았더니 대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갑옷을 보게.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들은  모두 작은 

          몸집이었지. 특히  갑옷의 대부분을 제작한 프랑스인이나  이탈

          리아인은 평균  5피트 정도였을 거야.  여자는 물론 그보다  더 

          작았겠지. 광장에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난쟁이가  모인 것처럼 

          보였을 거야.」

          눈이 부신 듯한  행복감을 느끼면서 슬레이터는 갑옷실에 되돌

          아 갔다. 그리고  갑옷을 하나하나 자기 몸에다  꼼꼼히 점검해 

          보았다. 먼저 가장 옛날 형인 565년의  고대 로마식부터 시작하

          여 850년의 프랑크식, 1050년의 변형 철망호, 1535년 및 1650년

          의 맥시밀리안식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느 갑옷이든지 마치 자기를

          위해 만들어 놓지 않았나 싶을 만큼 몸에 꼭 들어맞았다.

          그 옛날에는 큰 사람은 기형이었단 말이다!

          이 때부터 슬레이터는 일종의 행복한  순응생활을 시작했다. 물

          론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카르브의 갑옷실에만 의존한 것이

          긴 했지만, 비통스런 노여움은 과장된 숙명론으로 바뀌어 갔다. 

          그 예전의 중세시대라면, 자기도 영웅이나  기사의 귀감으로 나아

          가 시합장에서  창기병을 눕혀 버리는 승리자도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음유시인이 자기의 무훈을 찬양하는  발라드를 

          읊조려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어쨌든 슬레이터가 모범적인 관리인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갑옷은 언제나 번쩍번쩍 빛났다.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파손된 경첩이나 가죽끈은  세심하게 원형 그대로 감쪽같이 보

          수되었다. 돌활이나  칼자루의 나무 부분이  썩은 곳은, 나무의 

          질과 결까지 완전히 맞추는 꼼꼼한  방법으로 복원시켰다. 기원

          전 200년대의 창이나 검들은 번쩍번쩍 윤이  나게 닦여 있었다. 

          벽에는 둥근 방패,  작은 방패, 타원형 방패, 손방패  같은 것들

          로 장식되었다.

          현실세계는 이미 슬레이터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았다. 버

          스를 탈 때도 아내하고 같이 보내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현실의 

          세계는 그 존재의 빛을 잃고 말았다. 현실세계에  있을 때의 그

          는, 한순간 시간을  늦추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거기서 빌빌대

          며 떠돌고만 있는 것이었다.

          잔업도 슬레이터에게는  괴롭지가 않았다. 셀마는 밤늦게  전화

          를 걸어서 집에 돌아오라고 바가지를  긁어야 했고, 일요일에는 

          출근하는 것을  억지로 말려야만  했다. 드디어 그녀는  유럽의 

          갑옷에 대해 질투  비슷한 격렬한 혐오감을 품게  되었다. 그리

          하여 그녀가 얼마 전에 언니 블랑슈를 방문하던 때보다도 이전

          의 과거에 대하여 집  안에서 얘기하는 것은 더 더욱 금지되었다

          그러나 슬레이터의 충직한 근무태도를 인정한 카르브가 1460년

          의 고딕식 갑옷을 그에게 주었던  것이었다. 슬레이터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려고 하지 않았다. 헬마는  지하실 이외에는 갑옷

          이 집안으로  들여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거,  지하실은 

          1460년의 고딕식 갑옷에는  습기가 너무 많은 곳이기 때문이었

          다.


          오후 2시, 슬레이터는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서  노크도 없이 카

          르브가 쓰던 서재로 들어갔다. 스케드모어는  책상 저편에 앉아

          서 두 다리를 쭉 뻗어 책상 모퉁이에 올려 놓고 오른손에는 위

          스키 병을 거머쥐고 있었다.

          마치 자기의 공훈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저걸 중지시켜 주십시오!」

          슬레이터는 숨이 차 헐떡이며 말했다.

          「뭣 때문에 그처럼 시끄럽게 구는가?」

          「어서 저 사람들을 말려주세요!」

          「자, 그러지 말고 같이 마시지 않겟나?」

          「저 사람들이 하는  일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요.  모두 엉

          망진창으로 부수고 있는 걸요!」

          「엉망진창으로 부순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난폭하게 함부로  내던지고, 흠집을 내고,  손에 잡히는 대로 

          둘러메고 해요. 비가 오는데  덮개도 안 씌우고 나르고 있어요. 

          저렇게 하면 녹이 슬어 버립니다.」

          스케드모어는 껄껄 웃었다.

          「저건 골동품이야. 녹이  생기면 나무의 좀과 같아서  점점 더 

          값이 나간단 말야.」

          「모조리 부서뜨려서는 곤란합니다.」

          「저들이 서둘고 있어서 그래. 저 잡동사니들을  5시 전에 여기

          서 운반해 내야 돼.」

          「그럼 저 사람들에게 말해주십쇼.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일러

          주십시오. 그렇게 말씀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스케드모어 씨.         

          「그만두지 못해?」

          「스케드모어 시!」

          「농담이 아니야. 나가게.」

          「부탁입니다!」

          「이제 와서,  지그러지거나 흠집이  생겨도 그게 무슨  상관인

           가? 저런건  어차피 몇 세기  동안 내돌려져 오던  물건들인데, 

           더 이상 가치가 떨어질 일도 없겠지. 캐나다에  사는 어떤 사람

           이 벌써 비싼  값을 매겨 주셨어. 카르브의  수집가로서의 명성 

           덕분에 모든  일이 잘 돼  나가는 중이지. 그놈은 물건도  보지 

           않았어. 계약서에 서명하고는, 수표와  함게 우편으로 보내왔어. 

           그놈이 주문한 건 한 토막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보내질 거야. 

           물건이 어떤 상태인지  그놈이 알 까닭이 없지.  그쪽에서 조각

           을 이어 맞추면 되니까 말야.」

          슬레이터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두 주먹을  피가 

          나리만큼 꼭  쥐었다. 그의  말소리는 간신히 알아들을  정도로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스케드모어  씨. 무슨 사람이 그 모양

          이오?」

          스케드모어는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무서운 기

          세로 책상을 돌아 슬레이터앞에 장승처럼 우뚝 섰다.

          「자, 당장 꺼져 버려!」

          그러나 문 쪽으로  뒷걸음치는 슬레이터의 그 연푸른빛 눈동자

          에는 굴종 이상의 그 무엇이 번뜩이고 있었다.

          「못난이!」

          그는 목쉰 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놈!」

         스케드모어는 주먹을 쳐들었다.

        「이걸 한대 먹고 싶어, 꼬마야.」

          슬레이터는 등뒤로 돌린  손으로 손잡이를 더듬어 열고 뒷걸음

          질 쳐서 복도로 나섰다. 계속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아뇨.」

          그는 공손히 말했다.

          「그런 건 필요치 않아요.」

          그는 어두운  층계를 내려가면서, 자기가 스케드모어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쇼크를 느끼거나  놀라지

          도 않았다.  그것은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스케드모어를  알고 

          있었고, 끊임없이 그를 죽이려고 노력하기라도 했던 것 같았다.

          슬레이터의 유일한 관심은 안전하게 스케드모어를 죽이는데 있

          었다. 그리고 경찰에는 붙잡히지 않도록.

          그는 땀투성이가 되어  투구와 박차를 집어넣은 상자를 포장하

          고 있는 가죽  잠바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가죽  잠바는 동료에

          게 얘기를 하고 이썽ㅆ다. 4시 반까지 전부 트럭에 실어야만, 5

          시까지 창고로 가서 트럭을  두고 수속을 끝낼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슬레이터도 4시까지는 해치워야 하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몇 분 후 가죽 잠바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 갑옷은 내 것이란 말이오. 내가 훔치기라도  하려는 줄로 

          생각되오?」

          슬레이터는 조용히 말했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요?」

          「설마 이렇게  당당하게 훔치는 사람은  없겠죠? 더구나 저런 

          잡동사니를 누가 훔치고 싶겠소?」

          「아무도 당신에게 훔친다고 말하진 않아요.

          슬레이터는 지갑을 꺼내서  지폐 몇 장을 빼냈다.  얘기하는 도

          중의 한마디 한마디, 동작의 하나하나가  이상한 행복감을 가져

          다주었다. 여태 한 번도 남에게 뇌물을 쥐어주는  것 같은 대담

          한 행위를 한  일이 없었다. 그는 1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내

          밀었다.

          가죽 잠바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것을 받더니 갑자기 상냥

          해졌다.

          「그 갑옷은 저  복도 끝 사무실에 놓여 있네. 상자를  좀 운반

          해 주실까? 그렇게  하면 다치지 않고 운반할 수  있겠지. 갑옷

          은 분해 하지 않도록 하고 조심해서 상자에  넣어야 하네. 알겠

          지?」

          「말씀대로 하죠.」

          「납으오 땜질되어 보강해 있으니 무척  무거울 걸세. 넘어뜨린 

          채 상자에 넣게.」

          「알겠습니다.」

          가죽 잠바가 말했다.

          슬레이터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지금 2시  반이네. 나는 갑옷을  운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해. 4시 전까지 준비해 놓겠네. 자네는 마지막으로 그것을 실어

          내서, 창고로 가는 도중에 우리 집에 부리고 가면 되네. 이것이 

          내 집 주소야.」

          그는 가죽잠바에게 메모쪽지를 주었다.

          가죽 잠바는 그것을  힐끗 보더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매

          부리코의 뚱뚱보를  불렀다. 슬레이터는 관을 연상시키는  나무

          상자를 지고  가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나무 

          궤짝을 그의 사무실로 운반해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슬레이터는 1460년의 고딕식 갑옷을 가리켰다.

          「바로 저거야. 4시가 되기 전까지는 자네들이  운반할 수 있도

          록 해놓겟네.」

          「알겠습니다.」

          가죽 잠바가 말했다.

          그들이 가 버리자 사무실에 혼자 남은  슬레이터는, 곧바로 300

          파운드나 나가는 강철로 자신의 몸을 감싸는 어려운 일에 착수

          했다. 그 일은  몇 사람의 충실한 하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보로받을  수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몸에 걸침으로써  몸속에 넘쳐나는 집념과 같은 정력

          이 이 일을 자기 혼자서 해야 한다는 불행감을 감싸주었다.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갑옷을 분해하는  것이었다. 갑옷의 가슴

          과 등  부분을 맞춰서 방바닥에 세워놓고  어깨 쪽의 고리쇠를 

          잠갔다. 그 다음 엎드려  경첩이 달린 부분으로 기어들어 가서, 

          머리부분을 목까지  내밀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시종일관  후들

          후들 떨리는 손으로 배 가리개와 사타구니를 덮는 허리 가리개

          를 서둘러 잠갔다.

          그러거 나서  강철 정강이, 경첩이 달린  강철의 발, 어깨 가리

          개, 팔 가리개 등을  차례차례 잠금에 따라, 그의 몸은 강철 누

          에고치 속에서 확확 달아오르고 힘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양쪽 어깨  가리개를 고정시키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

          다. 몇 번인가 손을 멈추고 아픈 팔을  쉬어가며 호흡을 가다듬

          어야 했다. 잘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공

          포심이 몸을 뚫고  지나갔다. 몸을 완전히 숨기지  않으면 안된

          다. 단 한군데라도 노출되어 스케드모어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

          면 안  된다. 더구나 트럭에  실릴 때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몸이 완전히 가려져 있어야만 된다.

          사지를 뒤틀고, 신음하면서 악전고투한 끝에  드디어 마지막 허

          리 가리개와 허벅다리 가리개를 몸에 붙였다.

          이것으로 준비는 대충  된 셈이다. 나머지는 사나운  개의 얼굴 

          같은 큰 투구와  묵직한 쇠장갑이 남아 있을  뿐이다. 쇠장갑을 

          맨 나중에 하기로 정했다. 이 힘든 작업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는 두 손과 손가락은 자유럽게 남아 있어야 했다.

          그는 투구를 집어들려다가  셀마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생

          각이 들었다. 터러덕털커덕  방을 가로질러 걸으니, 강철신발을 

          신은 발은 마치  낙하하는 바윗덩어리 같은 중량으로 방바닥을 

          때렸다. 무거운 투구가  책상 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

          졌다. 그는 다이얼을 돌렸다.

          「셀마, 잘들어!」

          「뭐라구요?」

          「잘 들으라고 했어. 말대꾸하지 말고 들어줘.」

          「네, 알겠어요.」

          「카르브 대령님이 살아계실  때 내게 선물을 주셨어.  갑옷 한 

          틀이야. 그걸 집으로 운반하기로 했어. 4시 반쯤에는 집에 도착

          할 거야.」

          「어머, 안 돼요1 그런 거…….」

          슬레이터가 발을 구르니, 방안이 처렁처렁 울렸다.

          「나무상자가 배달되면 받아놓아야 해. 셀마, 그렇지 않으면 나

          중에 후회하게 될 거야. 알았지?」

          「모리스!」

          「그 갑옷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물건이야. 이 점을  잊지 

          말아줘.」

          슬레이터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투구를 썼다.  한동안 그는 제자

          리에 선 채 숨쉬기를  하면서 좁은 눈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

          았다. 투구를 가슴가리개 장식에다 고정시키는  다섯 개의 자물

          쇠를 잠그는 손가락이 땀에 젖어 미끌거렸다.

          투구의 고정을 끝내고 나서 그는  주위를 거닐었다. 삐걱거리며 

          소리나는 부분에다  기름을 주어서 소리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쇠장갑을 꼈다. 쇠장갑은 각각 팔굽까지 닿았는데, 거기

          서 윗팔 가리개에다  자물쇠로 잠그는 것이다. 손가락  없는 커

          다란 쇠장갑인데  경첩으로 움직이고, 희미하게 파악력을  가진 

          엄지 하나가 달려  있다. 쇠장갑 아나의 무게는  35파운드나 되

          었다. 그 옛날, 낙마해서 칼을 잃든지 부러져 버리게 된 기사가 

          강력한 무기로 곤봉 대신 쓴던 것이다. 그는  왼쪽 쇠장갑의 자

          물쇠를 짓이겨서 고정시켰다.

          시계는 3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케드모어를  살해하기 

          위한 초소한의 시간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평소에 이 층계를 올라갈 때는 항상 숨이  찼었다. 그런데 지금 

          450파운드의 무게가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하나도 힘들지않았

          다. 마치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다지 써본 일이 

          없었던 몸속의 정력을 모두 소비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복도로  나섰다. 지금  슬레이터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부글부글 끓어흐르는 용암이나 빙하의 완강한 힘, 그것이었다.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그는 강철 팔뚝을 쳐들고 문을 두들겼

          다. 경판이 산산조각으로 떨어져 나갔다.

          스케드모어가 문을  열자, 슬레이터는 쿵쿵거리며 방안으로  밀

          고 들어가서 쇠장갑을 세차게 내둘렀다.

          스케드모어는 무서운 환력에 떠밀려서 책상에 힘껏 내동댕이쳐 

          졌다. 책상 옆에  나자빠진 그의 큼직한 얼굴이  풍선처럼 쿨렁

          쿨렁 요동쳤다. 피가 입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어이쿠!'

          그는 공포로 떨며 부르짖었다.

          '이거…….'

          슬레이터의 450파운드나 되는 무게가 스케드모어에게 달려들어 

          그를 벽에다  밀어붙였다. 쇠장갑의  일격이 으의 갈비뼈  둘을 

          부러뜨렸다. 거인은 익숙한 원투 펀치를  내놓았으나 손가락 관

          절이 부서지자 괴상한 비명을 내질렀다.  35파운드의 강철이 ㄱ

          의 코와  이빨을 강타했다. 스케드모어는 슬레이터의  복부에다 

          가냘픈 공격을 가했으나, 이윽고 쇄골이  꺾이자 신음소리를 내

          면서 바닥에 거꾸러졌다.

          슬레이터는 벽에서 쇠사슬  달린 쇠공을 벗겨 내리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문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스케드모어

          를 붙잡았다.

          투구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나무상자에 드

          러 누워 있었다.  빗물이 투구의 틈새로 졸졸  스며들어서 지독

          한 몸속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가죽 잠바와 또 한  사람이 투덜대면서 그가 들어 잇는 상자를 

          메고 정문 포치의  돌층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잘  진행될 것

          이다. 자기에게는 절대로 혐의가 오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었다.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배심원들은 물론 경찰관이라도,  체중이 

          겨우 126파운드밖에 나가지 않는 가냘픈 남자를 조 스케드모어

          에게 가해진 잔학행위의 범인으로 지목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

          마 몸집이 큰  거인을 찾아다니겠지. 모리스 슬레이터  같은 남

          자는 결코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걸 이리로 들여놓지 말아요!'

          셀마가 소리쳤다.

          상자 속의 슬레이터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아주머니, 이건여기로 운반하라는 물건이에요.'

          가죽 잠바가 말했다.

          '네, 그러나 집  안에 들여 놓지 말라는 거예요.  방안이 진흙투

           성이가 되니까요. 집 모퉁이를  돌면 지하실이 있어요. 지금 내

          려가서 문을  열겠어요. 석탄을  쏟아 넣는 창문이니까  거기로 

          떨어뜨려 주시면 돼요.'

          슬레이터는 꿈틀꿈틀  몸을 놀렸다. 안경테가 투구의  중앙부에 

          부딪혀서 쓸데없는 커다란 소리를 냈다.

          '빨리 해! 시간이 없어.'

          가죽 잠바가 말했다.

          무서운 속도롤 낙하하는 감각, 충격, 그리고 암흑.

          슬레이터는 눈을 떠보았으나 폐광 속과  같은 암흑이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상자를 간신히 빠져나왔다.  어둠 속을 더듬거리

          며 전등 스위치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것이 층계  위에 있다

          는 기억이 번쩍 들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먼저 

          갑옷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그는 셀마를  신뢰하고 있지는 않았

          다. 갑옷 곳에 들어 있는 자신을 셀마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

          다.

          몇 번이고 갑옷의 바깥쪽을 두들기는 동안 쇠장갑을 낀 채로는 

          갑옷의 자물쇠를 벗길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해서 쇠

          장갑을 벗길 것인가?  돌벽에다 동댕이쳐 보았다. 망치를  찾아

          내어 자신의 팔을 때려도 보았다.

          슬레이터가 공포로 인해  기절해 버린 것이 언제쯤이었는지 정

          확하게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큰소리로 고함쳤으면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고함소

          리가 두꺼운 투구와  집의방바닥을 통해서 셀마의 귀에까지 이

          르렀다 하더라도  셀마는 집에  없었다. 월요일 밤에는  언제나 

          교회의 친목회에 참석하기 때문이었다.

          낡은 층계는 그가  부엌문으로 기어오르자 털커덕 무너져 버렸

          다. 몇 번이나 거듭해서 벽에다 몸을 부딪쳐 보았다. 석탄 쏟는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려고  죽을 힘을 다해 보았다.  그러나 비

          록 그 들창문에 다다랐다 하더라도 아마 거기서 기어나갈 힘은 

          남아 있지 않았으리라.

          그는 녹초가  되어 바닥을  기어다닐 기력조차 없었다.  자빠진 

          채 축 늘어져서 가물가물 잠이 들었다.

          화요일 이른 새벽에 한  대의 트럭이 와서 석탄 쏟는 창문으로 

          5톤의 석탄을 지하실에 쏟아부었다.


          브라이스 윌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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